나는 의외로 근성론자이다.
의외는 아닌가?
정말 간절히 원하고 그 원하는 만큼의 노력을 하면 시간은 걸릴 지언정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게 그렇다고 못, 혹은 안 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고, [이루어질 때까지 이루어지길 원하는 만큼의 노력]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은 없지만 가능해질 때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뭘까란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 단어는 근성론자라는 결론이 났다.
이제 그렇게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고,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다 쓸 수는 없게 되었다.
이게 이렇게 되니 언제나 나의 모토인 [할 수 있어]란 말이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할 수 있어]는 될 때까지 노력을 하는 것이니 남한텐 특히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나 자신에게 조차 가볍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왜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냐 하면은...
솔직히 이 공간에 이렇게 쓰는 것도 창피한 일인데,
내 엉망인 글을 볼 때마다 요새 드는 생각이다.
진짜 엉망인 것도 알고 문제 덩어리라는 것도 아는데, 나아지는 기미도 안 보이니 힘들다.
사실 뭘 어떻게 하면 글이 느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막무가내로 책을 읽고, 뭔가를 쓰기를 반복할 뿐이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초조함도 있고,
사실 글로 뭘 이루겠다는 목표도 없이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싸지르기를 계속하면서 고민만 늘고 있다.
뭔가를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이게 다 [잘]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이 문제이다.
언제나와 같이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뿐이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그러니까 지금 나는 푸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푸념을 늘어놔 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것도 없고 그냥 기분전환이라 생각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워버리자.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야.
이런 내가 진정한 근성론자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