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재작년 설이 같이 지낸 마지막 설이 되었다.

장초란 2021. 12. 15. 00:30

사귀고 있는 친구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엊그제 갑자기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더니 열은 괜찮아졌는데

몸이 많이 약해져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틀 뒤에 돌아가셨다.
80이 넘는 연세이시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검은 양복을 사러 간다는 소리를 했었는데 이 친구는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오히려 준비가 안 된 것은 일면식도 없는 나였다.

 

소식을 듣고 먹먹해져 왔다. 우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결국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나서 할아버지께서 좋은 곳에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했다.
사실 엊그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생각이 나고 고양이 생각도 나고 아빠 엄마도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죽은 다음엔 천국에 갈 것이라 믿고 있는데,
이 친구네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당장 가서 하나님을 믿겠다고,

천국에 갈 것이라고 신앙고백이라도 시켜야 하나 엄청 고민을 했었다.
실제론 이 발칙한 생각을 실행할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의 이 무례한 계획은 수포로 끝났지만.

 

이제 곧 설이다.(일본은 신정) 연말연시의 분위기가 거리에 한창이다.
일본도 작년까진 코로나로 친척들이 모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다가오는 설은 상황이 좋아져서 모일 수 있는데… 이 친구는 재작년 설이 할아버지와 같이 지낸 마지막 설이 된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지만 나 같으면
조금 더 같이 있을 걸… 조금 더 같이 사진도 많이 찍을걸…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잘할걸.
뭘 어떻게 했든 간에 조금 더

조금 더

가 넘쳐흘러서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

 

죽은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죽은 사람은 천국을 가던 다음 생을 살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는 연이 끊기는 것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기억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나는 인간관계가 상당히 좁은데도 소중한 존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존재들 하나하나가 다 삶의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나는 안다.
이렇게 매일 매 순간 되뇌며, 소중하게 주위의 존재들을 접한다.
무엇이 마지막이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이렇게 준비 해도 역시 그때가 되면 더, 더! 할 수 없었을까 괴롭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인간관계가 넓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것일까. 가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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