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이상적인 마지막

장초란 2021. 8. 17. 00:58

2021.8.16. 월요일 

언제부터였을까  난 나의 마지막 날을 곧 잘 상상한다.

당시의 심리 상태에 따라 그 상상의 모습은 변하는데 요샌 내가 원하는 마지막을 그리려 하는 것 같다. 막연한 불안감에서가 아닌 이상적인 마지막을 생각하고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것은 나름의 발전이라 생각인 든다. 나이 먹고 건전해진 것 같다.

저번 주 금요일 코로나 백신(모더나) 2차를 맞고 토요일부터 고열에 시달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지라 젤리 라던가 삶은 달걀 등을 미리 준비를 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열을 38도 넘게 내고 사지를 왔다 갔다. 정신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취직하고 돈 벌면서 작은 감기도 걸려 본 적이 손에 꼽을 만치였던 것 같다.

이 무더운 날씨에 추위를 느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 몸을 돌돌 말았다.
몸에 무엇이 스칠 때마다 칼로 후벼 파는 것 같았고, 주사 맞은 왼쪽 팔은 누가 두들겨 때린 것 같이 무겁고 아팠다.

근데 신기한 것은 평소에 맨날 본인의 마지막 날을 상상하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백신 부작용? 작용? 으로 인한 고통 속에선 마지막 날을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상상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맞은 백신에, 몸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열을 내고 있는 이 경건한 순간에 감히 마지막 날을 생각하다니!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어  항체가 만들어진 뒤의 자유로운 몸을 상상했다.

괴로웠지만, 
평안해졌다.

그리곤 문득 떠올랐다.

이 감각이 나의 마지막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참 약하고 하찮은 인간이다. 
하루 열 난 것으로 이리도 난리 법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