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망상대전

48시간 세대-불면증

장초란 2020. 9. 28. 00:51

네가 자고 있는 서른 하고도 네 번째 26시. 

 

“이 새끼 또 자고 있네.”
 잠 좀 그만 처자라는 듯 짜증 난 목소리로 도윤이를 깨운다. 25시 정도에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우민이는 도윤이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는 같이 영화를 보는 듯하더니 영화가 고조되는 클라이맥스에서 도윤이는 그냥 고꾸라져 잠을 자고 있다. 영화의 초이스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도윤이가 보고 싶어 하던 공상과학 영화이다. 오히려 이런 노잼 영화를 꿋꿋이 보는 우민이가 더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네가 좋아하는 캐러멜 팝콘도 사 왔다고! 왜 먹질 못 하고 처자고 있냐고요.”

 나사에서 하루 48시간 운용 실험이 성공한 지 50년. 24시간보다 48시간 운용이 건강과 삶의 질이 높은 것은 이미 많은 사례로 증명되었다. 그로 인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하루 48시간 운용을 국민들에게 추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선 약 20년 전부터 교육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의 하루 계획표는 물론 대학교에서는 강의도 48시간을 염두하고 시간표를 짠다. 

 이렇게 48시간 운용에 길들여진 세대가 벌써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이들은 사회에선 48시간 세대라고 부른다.
 48시간 세대에서는 불면증이 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불면증이란 수면장애가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민이는 새근새근 쿠션을 껴안고 잘도 자는 도윤이를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웃어 버린다.
 “잠 많은 널 내가 어찌하겠냐.” 
 도윤이 방의 전등불은 꺼져있고, 텔레비전에선 어둑어둑한 화면의 20년 전의 공상과학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볼륨을 한껏 줄여 나즉나즉한 백색 소음이 방 안에서 소곤대는 듯하다. 캐러멜 팝콘이 달다 못해 쓰다. 

 48시간 운용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는 나사에서는 48시간 중 37시간은 깨어있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일단 아침 6시에 잠에서 깬다. 그리고 낮동안 각자의 삶을 산다. 식사는 24시간 운용과 같은 타이밍에 먹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퇴근도 24시간과 같은 시간에 한다. 사람이 집중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24시간과 48시간이 뭐가 다르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은 20시간 때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깨어있는 동안 출근을 두 번 퇴근을 두 번 하게 된다. 그리고 37시간(이틀 째 저녁 7시)부터 잠을 잔다. 불면증이었던 사람들도 별 다른 노력 없이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만으로도 기절하듯 잠이 든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6시에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의 평생 수면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수면장애와 질 높은 수면의 상관성 등을 고려해 수년을 실험한 결과 48시간 운용이 가장 현대 인간의 삶에 적합하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문화와 습관이 인류에게 번지게 되었다. [밤늦게]라는 단어는 사어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 새벽에 증상이 심해지는 중2병도 그 병세가 전체적으로 완화되었다. 하루가 짧다는 말도 옛 말이 되어 버렸다. 대신 놀다 지쳤다는 말이 리얼로 일어나고 있다. 20시간대에 깨어 있는 것이 당연하므로 어두울 때 활동하는 것도 당연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우민이의 [도윤이네 집에 25시에 영화 보자고 팝콘 들고 오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다 큰 성인 남성 두 명이 불 끄고 같은 방에서 손잡고 고전 영화를 보는 것은 24시간 시대에도 48시간 시대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특히나 한쪽은 아직 26시뿐이 안 된 이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일어날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짝 잡은 손은 캐러멜 팝콘이 묻었는지, 우민이의 땀인지, 우민이의 몹쓸 망상 때문인지... 끈적인다.
 26시가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하루빨리 48시간 운용을 도입해야 한다. 재택근무 6개월 차인 내가 내 몸 직접 써가며 실험한 결과, 최소 불면증이란 단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나사도 48시간 운용을 검토해 발표하고, 세계 각지의 정부도 48시간 운용을 도입해야 한다. 내가 감히 말하는데 48시간 운용으로 인구 감소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헤테로도 게이도 레즈도 그 밖의 여러 사람들도 수면 장애가 없어지고 건강한 정신상태로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민이도 20시간대의 긴 시간 동안 도윤이 손만 잡고 있겠냐. 

 젠장. 캐러멜 팝콘이 아깝다. 벌써 서른 하고도 네 번째 밤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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