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망상대전

지구 침공-편식

장초란 2020. 10. 4. 00:40

침공당하는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카키는 항상 주황색이라고 대답한다.
빨강색은 규리가 싫어하는 색이고 노란색은 규리가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규리는 토마토를 싫어했다.
규리는 토마토가 빨강색과 녹색을 연상시킨다 하여 싫다고 했다. 규리는 카키도 싫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규리는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 보다 많았지만 빨강색과 녹색이 같이 있는 토마토와 카키는 싫어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컬러네.”
“...”
녹색 야채 위에 반쪽으로 잘린 방울토마토가 잔득 뿌려진 샐러드가 나왔다. 소스는 올리브 오일이다.
비아냥거리는 규리를 앞에 두고 카키는 포크를 들었다. 포크위에 푸른 이파리를 올리고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 마무리로 반쪽짜리 방울토마토를 올려 입안에 넣었다. 치즈도 야채도 올리브 오일도 다 좋아하지만 토마토가 거슬린다.

카키는 토마토를 딱히 싫어하지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
오늘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규리가 카키에게 점심약속을 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외관을 보기만 해도 사진이라곤 없는 메뉴판에 비싼 요리뿐이 없을 것 같은 고급 토마토 요리 전문점이다. 카키와 규리는 벽면이 거의 창으로 뒤덮인 창가 자리였다. 벽부터 시작해 천장, 문, 가게의 거의 대부분의 인테리어의 색이 따듯한 아이보리 색으로 뒤덮여 있는 이 공간에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온 카키는 눈에 띄었다. 마치, 오늘 이 공간과 시간은 카키가 주인공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드레스 코드는 빨강이야]라고 카키에게 이야기 해 놓고 규리 본인은 흰색 차이나 원피스를 입고 왔다. 규리의 변덕은 이제 와서 화 낼 거리도 되지 않기에 신경도 안 쓰인다. 그냥 오늘도 자신을 괴롭히고 싶은 것뿐이라고 카키는 생각했다. 다만 눈앞의 카키에게 기분이 좋다고 웃으며 말하는 규리의 얼굴을 보고 카키는 기쁘다가도 문득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무서워졌다.

규리는 정말로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포크로 토마토를 찔러 입안에 넣었다.
“토마토는 정말 완벽한 것 같아.”
[토마토 전문점에서 토마토를 먹으며 카키의 눈앞에서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규리] 하나하나 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나열이다.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낮의 여름날인데도 불구하고 카키는 서늘함을 느꼈다.
“규리야...네가 토마토를...좋아했었나?”
카키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평소에도 똑바로 얼굴을 들어 규리를 보는 것도 잘 못 하는 카키가 지금의 규리에게 진짜로 묻고 싶은 것을 물어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릇 위에 올라와 있는 빨강 토마토를 포크로 이리저리 굴리며 규리의 눈치나 보고 있다.
“난 카키 네가 싫어.”
역시나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카키는 규리가 무섭다. 규리의 모든 것을 미칠 듯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규리의 밝은 주황색 머리카락을 좋아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말을 하는 규리의 저 혀도, 자신을 벌레 보듯 보는 저 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옆에 두는 규리가 불쌍하면서도 무서우면서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내 눈치 보지 말고 먹어. 토마토는 완벽하니까.”
점원이 파스타를 들고 왔다. 초록 이파리와 방울토마토가 올려져 있는 파스타였다. 아까 먹은 샐러드에 파스타 면만 추가한 듯한 비주얼이다. 규리는 누가 쫒아라도 오는 듯 허겁지겁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규리의 눈에는 새빨간 토마토뿐이 비춰져 있었다.
“규리야...천천히 먹어...”
카키는 걱정이 되어 천천히 먹으라 말을 했지만 규리는 오히려 벙찐 표정이 되어 카키에게 되물었다.
“토마토를 앞에 두고 어떻게 천천히 먹을 수가 있어?”
무슨 열 받는 소리를 하냐는 듯 규리의 언성이 점점 놓아진다.
“무슨... 말이야? 넌 원래 토마토를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점점 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규리를 앞에 두고 카키는 용기를 쥐어짜며 되물었다. 카키의 앞에 놓여있는 파스타의 토마토의 색이 빨강이 아닌 핏물과 같은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완벽해. 나의 몸은 토마토 섭취로 우주에 점점 가까워져.”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왜 모르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일부러 너도 토마토를 먹을 수 있게 여기로 데리고 온 거잖아? 먹어!”
규리는 평소 카키를 괴롭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거나 윽박을 지르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늘의 규리는 평소와 달랐다.
“...”
“먹으라고!!”
규리가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는데 가게 안에 있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밝고 따스한 햇볕이 잘 들어오는 큰 창문과 따뜻한 느낌의 아이보리색의 공간은 아늑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아늑함 속에서 카키는 혼자 이질적인 존재였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규리조차 이 공간에 어울리는 존재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규리가 진정 할까. 카키는 원래도 억울한 얼굴이지만 이젠 거의 우는 표정이 되었다.
“규리야...일단...진정해봐...”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네가 토마토를 안 먹겠다는데?!!”
“내가...언제 안 먹겠다고...그냥...네가 평소와 다르니까...”
말을 하면서 카키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규리가 카키를 괴롭히는 것은 같았다.
“...먹을게. 앉아.”

카키는 눈앞의 토마토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규리는 다시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음 음식들이 날라져 온다. 모두 토마토를 이용한 음식이고 모두 조리하지 않은 생 토마토를 사용한 요리들이였다. 마지막은 디저트. 토마토위에 모차렐라 치즈가 얹어져있고 꿀이 뿌려져 있었다. 이 역시 처음 나온 샐러드와 거의 흡사한 음식이었다. 마지막 한입을 먹고 카키는 눈의 초점을 흐리며 이렇게 말했다.
“토마토는 완벽해.”
카키의 고백과도 같은 말을 들으며 앞에서 지켜보던 규리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제야 카키도 이 공간에 어울리는 존재같이 느껴졌다.
“나는 카키 네가 싫어.”
카키는 흐려져 가는 의식을 뒤로하면서도 규리의 이 말에 안심했다.
“다행이다...”
카키의 눈앞의 시야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토마토를 이용한 외계의 지구침략은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계획되었고 실행되어 온 작전이다.
토마토를 섭취 할 때마다 사람 몸속에 토마토 DNA가 심어진다.
그것이 점점 몸에 축적되어 제정신 차렸을 땐 지구의 인간이 아닌 지구의 토마토성인이 되어버린 후이다.

 

토마토는 몸에 좋다는 이론과 그 색이 식욕을 돋궈준다는 이유로 많은 요리에 사용되어왔다.

아니, 사용되도록 외계인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들어낸 식물이다.
나조차도 토마토가 이런 도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이 먹고선 몸에 좋다고 매일 억지로 토마토를 꾸역꾸역 하나 씩 먹고 있으니 말 다한 거다.

너무 무섭다. 토마토.
토마토를 안 먹는 사람들은 편식이 아니다.
갖은 유혹을 뿌리치고 외계 생명체로 부터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이다.

'공상망상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 로망 시대 -아레시보 메시지  (0) 2020.10.12
48시간 세대-불면증  (0) 202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