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망상대전

우주 로망 시대 -아레시보 메시지

장초란 2020. 10. 12. 12:45

어느 외계인의 고백 (나의 사랑스러운 행성에게) 

내가 살던 행성은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50광년 떨어진 행성, [아리에라]가 나의 고향이다. 
 

약 10년 전 내가 살던 아리에라와 그 주변 행성들에 지구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었다. 

지구인들에 대해, 그리고 지구에 대해 간단한 2진법으로 표현된 전파 메시지였다. 
우린 모두 놀랐다. 보내져 온 전파를 보면 분명 아직 문명 수준은 우주여행을 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었다. 

그런 행성에서 자신들을 알리는 메시지를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 것이었다. 

게다가 메시지의 DNA를 분석해 본 결과 메시지를 작성한 본인은  벌써 생명을 다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적지로 설정되어있는 허큘리스 대성단에 도착하기까지는 25,000년이 걸릴 예정이며, 메시지의 답변을 하면 왕복 약 5만 년. 이것은 이 생명체가 지구라는 행성에 나타난 역사보다 더 긴 세월을 의미했다. 
 

보통 이 정도의 문명에선 아직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멀리 있는 미래의 어떠한 친구에게 자신의 별에 놀러 오라고 초대장을 보내는 생명체들. 우리들은 단번에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생명체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에게 우린 푹 빠져버렸다. 이 로맨틱한 존재들을 당장 만나러 가고 싶었다.

 

그리고 비단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우리 행성뿐만이 아니라 이 전파 메시지를 수신한 많은 행성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속해있는 은하 역사상 이렇게 까지 외부 행성들끼리 대동단결된 적이 없을 정도로 이들과 만나고 싶다 라는 염원하에 속전속결로 여러 가지 조약들이 체결되어갔다.     

 

여러 행성에서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겁먹게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일치했고, 가능하면 외부 행성에서 온 존재임을 숨기기로 했다. 메시지에 대략적으로 어떠한 겉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인지 쓰여 있었기에 모든 행성의 존재들은 지구인들 앞에선 ‘그렇게 보이도록’ 변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약이 맺어졌다. 그 밖의 행성의 환경, 과학, 정치 등 이들의 미래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일절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조약을 마지막으로 지구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행성에서 로망을 찾아 지구라는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우주 대 로망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지구의 사람 나이로 약 27살 정도이다. 

10년 전, 지구에 처음 왔을 때엔 17살의 고등학생으로 둔갑을 했었다. 

메시지엔 남성의 특징뿐이 없었기에 비교적 초창기에 지구에 온 외부자들은 모두 자동적으로 자신을 남성으로 설정했었다. 

나 또한 성별은 남성이다. (지금은 지구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생태계 등 많은 연구가 되어 있으므로 요새 오는 애들은 자신이 골라, 다양한 성별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난 대한민국에서 수능도 치고 군대도 다녀온 떳떳한 한국 남자 사람이다. 

처음엔 관광으로 3년 정도 살아 볼 생각이 이렇게 눌러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구에서의 생활은 하나하나가 모두 아날로그적이었다. 문명 레벨은 물론이거니와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모두 아날로그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타인과 생각을 교환할 때에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 뇌에서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토대로 성대를 움직이고 입을 움직여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수신하는 쪽도 소리를 듣도록 뇌가 명령을 하고 들리는 소리를 언어로 인식을 하고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의 생명체들은 4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3차원까지 밖에 인식을 할 수가 없다. 

신체도 그에 맞게 만들어졌다. 
그에 비하면 12차원에서 사는 아리에라인은 지구로 치면 뇌만 활발히 쓸 뿐이다. 소리를 내거나 듣거나 손으로 물리적인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만지는 귀찮은 행위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개념의 세계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아날로그적인 활동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리에라 행성에서 처음 이들의 전파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사랑스러움을 몇 배나 뻥튀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음식을 섭취하고, 잠을 자고, 음악을 듣고, 웃고, 울며, 미래를 꿈꾸고, 앞으로 나아간다. 분명 개개인으로 보면 모두가 현명하다거나 선하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사람 하나를 보더라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존재이다. 

하지만 모두 [나]가 뚜렷하다는 반증이다. 4차원 공간에서의 삶은 타인과 자신의 경계가 뚜렷해, [나]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나]가 존재함으로써 극대화되는, 실체가 없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 그 상상을 무언가로 구현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의지가 이들의 사랑스러움의 원천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들로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의 존재에게 편지를 보내버리는 것도, 그리고 그 편지를 본 나란 존재가 로망을 찾아 여기 지구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상상력과 의지는 증명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지구에서 같이 사는 나도 지구의 일원이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처음 지구인들로부터 자기소개를 받고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나는 지구를 많이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암튼 그렇다고 내가 내일 출근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출근해야 할 텐데... 영원히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이 외계인, 인류를 로맨틱한 존재라고 몇 번이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초대장 받고 맘 설레 한걸음에 50광년 떨어진 지구까지 와서 10년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사랑한다 말하는 이 생명체야 말로 사랑스러움의 극치가 아닐까 싶다.

 

너무 부끄럽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최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 지식에 대해선 말로 할 것이 못 되고, 칼 세이건이 얼마나 우주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우주를 사랑하기에 인류를 그리고 지구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 반대 일 수도 있겠다.)

 

난 칼 세이건이 이러했듯 외계의 우리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존재는 분명 사랑이 넘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적 생명체는 분명 지구인도 지구도 아주 많이 사랑해 주지 않을까. 

나는 그런 지적 생명체도 우리 지구도 아주 많이 사랑할 것이다. 

라기 보단 우주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사랑이 넘치는 우주에 로망을 담아 내 소망을 띄운다. 
내일 출근 안 해도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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